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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일의 뼈대를 세우는 단단한 힘
- 저* *
- 조회 : 201
- 등록일 : 2026-06-23
2024년 9월 세저리에 부임해 조벼리를 처음 만났을 때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던 질문은 ‘벼리’라는 이름을 누가 지어주신 것이며, 무슨 뜻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이 두툼한 한국어사전을 펼쳐 이 단어, 저 단어를 살펴보시다가 고른 것이라 했습니다. ‘벼리’라는 단어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좋은 뜻을 품고 있었다고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벼리’를 찾으니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놓아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는 것,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저의 첫 강의조교였던 조벼리는 일의 뼈대를 세우는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흐트러짐이 없어서 때로 교수마저도 옷깃을 여미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히 살필 줄 아는 배려가 있었습니다.
가냘파 보이지만 그를 겪어본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강단 있는 조벼리가 이제 전문지의 기자로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만나는 사람과 사물을 하나도 놓치는 것없이 관찰하려던 조벼리가 그 끝없는 탐구심을 밑천삼아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진 기자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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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6기 조벼리입니다. 2026년 전자신문 공채에 합격해 지금은 수습기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대학을 졸업한 직후 세저리에 입학했습니다. 세저리에서는 언제나 막내였습니다. 주변에서 “천천히 해도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 말은 자연스레 제 선택에 스며들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입사 지원을 서두르기보다 공부와 취재에 집중했고, 졸업 후에는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언론사 인턴 6개월, 조교 6개월을 거쳐 수습기자가 됐습니다.

(사진 설명: 2023년 6월 ‘글로벌 팩트 10’ 현장을 취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저리를 선택한 이유는 '편집국 같은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까지 언론 관련 경험이 없었습니다. 기자라는 꿈도 막연했습니다. 실제로 기사를 쓰면서 이 직업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세저리가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학보사 출신부터 전직 기자·PD까지, 동료들의 경험은 다양했습니다. 어제보다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대학원 수업과 단비뉴스 활동에 충실했습니다. 변화는 저절로 생기지 않고, 좀 버겁다고 느껴질 만큼 매진해야 비로소 생긴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설명: 2023년 9월 단비뉴스 꿀벌 취재팀 기자들이
한국일보 기획취재 공모전 수상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정당한 비판을 감내하는 정신력’입니다. 안수찬 교수님 수업을 통해, 제대로 된 비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교한 쇄빙선처럼, 섬세한 언어로 사고의 폭을 넓혀주시던 취재보도론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은령 교수님께서는 농업농촌보도실습 취재 현장에서 창의적인 질문을 던져 대상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게 이끌어주셨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대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충실하게 분석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제정임 교수님께는 경청하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교수님을 본받아 인문사회교양특강 수업에서 예리한 지점까지 파고 들어가는 질문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습니다. 경청은 성실한 훈련으로 다듬어지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지도교수이신 심석태 교수님께서는 입장을 세우고 설득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지역사회부 회의와 방송취재보도론 수업을 통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서 내 입장을 명확히 하고 공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논리와 관점을 담은 기사들을 완성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진 설명: 2024년 지역사회부 부원들이 가왕전에서 획득한 상금으로
함께 나눠 먹을 과일을 고르며 기뻐하고 있다.)
2년이 흐르자, 모호했던 꿈이 선명해졌습니다. 기자로서의 마음가짐도 진지해졌습니다. 다만 대학원에서 다진 기반을 현업에서 확장해보고 싶었습니다. 운 좋게 졸업 직후 JTBC 인턴, 중앙일보 인턴기자로 일하며 좋은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나의 희망대로 단정하지 않게 됐고, 그제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신중하고, 결정이 느린 편입니다. 대신 한 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렇게 졸업 후 1년이 지나, 기자라는 업이 제게 잘 맞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부턴 절실함으로 기자라는 직업을 붙들었습니다. 반드시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사진 설명: 입학 첫 학기 기숙사 룸메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후에는 제정임 교수님의 권유로 대학원 영상조교로 일했습니다. 교수님들께서 저를 믿고 기회를 주신 덕분에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행정실 업무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던 시절, 늘 따뜻하게 챙겨주신 이승현 연구원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신 곽영신 박사님, 동고동락했던 나경·미래·정은·옥주 연구원께도 감사드립니다.

(사진 설명: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준 16기 동기들)
마주칠 때마다 아낌없이 응원해주신 박정용 교수님, 데이터 분석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상준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준 16기 동기 태연, 다연, 준영, 은주, 민정, 소현, 재호, 진국, 혁규, 승연, 지영, 은별, 예나, 현지, 수현 그리고 옥주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세상은 공부의 쓸모를 빠르게 증명하기를 요구합니다. 세저리는 끝내 그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라 믿습니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처럼, 잘 보이지 않는 대상을 파고들었던 경험은 기자 생활을 버티는 힘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이 부끄럽지 않도록, 현장에서 성실하게 취재하며 좋은 기사 쓰겠습니다.